보이는 것을 넘어 유래 속에서 만나는 생생한 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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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보이는 것을 넘어 유래 속에서 만나는 생생한 우도

제주시 우도면사무소 부면장 김희수

제주시 우도면사무소 부면장 김희수
[정보신문] 지역의 유래를 알면 그 동네가 새롭게 보인다. 우도가 바로 그렇다. 나는 지난 8월 25일 우도면사무소 부면장으로 오면서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고민했다. 그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이 우도에 대해서 유래를 아는 것이었다.

우도(牛島)라는 명칭은 섬의 형상이 물소가 머리를 내민 모양(牛頭形) 또는 누운 소(臥牛形)와 비슷한데서 비롯되었으며, 오랜 옛날에는 주로 해산물 채취를 위한 주변지역 주민들의 왕래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조선조 숙종 23년(1397) 유한명 목사 당시 국유목장이 설치되면서부터는 국마(國馬)를 관리하고 사육하기 위해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해지기 시작했다.

그 후 헌종 8년(1842)에 국유목장이 폐지되고 개간이 허가 되었으며, 헌종 10년(1844)에 김석린 진사 일행이 입도하여 정착하면서 마을형성이 진전되어갔다.

우도에 법정리로는 연평리 1개인데 ‘연평리’라는 이름에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숨어 있다. 연평(蓮坪)이라는 명칭은 1900년(경자년)에 이곳에서 훈학(訓學)하던 표선 성읍출신 향교 훈장 오완철이 중심이 되어 우도(牛島)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수준도 높고 기질도 고상한 사람들인데 이곳이 소섬이라 불리는 소리가 거슬려 “물에 뜬 두둑”이란 뜻에서 연평(演坪)으로 명명하였다고 한다.

유래를 알고 나니 우도가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 이상으로 다가왔다. 주민들의 삶이 생생하게 머릿속에 그려졌다. 앞으로 내가 우도에서 펼칠 행정도 주민들의 삶 속에 온전하게 녹아들기를 기대해 본다.
정보신문 jbnews2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