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 끼에 담긴 마음‘ 광주 고려인마을 목요일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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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밥 한 끼에 담긴 마음‘ 광주 고려인마을 목요일의 기적

고려인 동포 자원봉사자들, 매주 100여 어르신에게 정성어린 무료급식 제공

매주 목요일 아침,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 노인돌봄센터는 따뜻한 온기가 감돈다. 새벽부터 하나둘 모여든 자원봉사자들의 분주한 손길 속에서, 고향의 맛과 사람의 온기를 기다리는 어르신들을 위한 밥상이 정성스럽게 차려진다./사진=고려인마을 제공
[정보신문 = 김금덕 기자] 매주 목요일 아침,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 노인돌봄센터는 따뜻한 온기가 감돈다. 새벽부터 하나둘 모여든 자원봉사자들의 분주한 손길 속에서, 고향의 맛과 사람의 온기를 기다리는 어르신들을 위한 밥상이 정성스럽게 차려진다.

주방 한편에선 당근을 곱게 썰어 김치를 담그고, 다른 한쪽에선 가지나물과 콩나물볶음, 삼겹살, 생선튀김이 연신 조리된다. 특별한 레시피는 없지만, 이 식탁만큼은 그 무엇보다 특별하다. 그 안에는 이주와 정착의 아픔을 지닌 이들이 서로를 위로하며 나누는 진심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21일 고려인마을에 따르면, 무료급식을 준비하는 이들은 모두 고려인 동포들이다. 중앙아시아에서 태어나 조상의 땅을 찾아 한국으로 돌아온 이들. 낯선 언어와 문화, 제도 속에서 수많은 어려움을 견뎌온 그들이 이제는 또 다른 동포를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과거 자신이 받았던 따뜻한 손길을, 지금은 누군가에게 되돌려주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피해 광주로 온 안엘레나(42) 씨도 그중 한 사람이다. “이 땅에 처음 왔을 때, 저 역시 누구보다 외롭고 막막했어요. 따뜻한 밥 한 끼가 그렇게 큰 힘이 되더라고요. 지금은 그 고마움을 나눌 때라고 생각했어요.” 그의 말에는 말로 다 담을 수 없는 지난 시간과 진심이 녹아 있었다.

무료급식을 받는 이들은 대부분 노령의 고려인 어르신들이다. 늘 생존을 위한 걱정에 끼니를 거르는 일이 많았던 이들에게, 목요일의 한 끼는 단순한 식사가 아닌 ‘살아갈 힘’이다. “여기 와서 밥 먹고 가면, 그래도 하루는 덜 외롭습니다.” 한 어르신의 말처럼, 이 밥상은 하루를 견디는 마음의 지지대가 되고 있다.

이곳을 찾는 인원은 매주 100여 명에 달한다. 자원봉사자들은 식사를 챙기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말벗이 되어주고, 건강 상태를 살피며, 필요한 물품은 집까지 직접 배달해준다. 어떤 날은 어르신들의 손톱을 다듬고, 어떤 날은 나눔으로 받은 쌀을 등에 지고 함께 길을 나선다.

이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식탁은 ‘한 끼’에 머물지 않는다. 이는 고려인마을이 지향해온 공동체 정신, 곧 ‘함께 살아가는 삶’의 실천이다. 일제강점기 강제이주로 중앙아시아에 뿌리내렸던 고려인들. 그 후손들이 다시 돌아온 이곳 광주에서, 이제는 서로를 돌보며 따뜻한 공동체를 일구고 있다.

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는 “이 밥상은 우리 민족의 전통이자 미래입니다. 한 사람의 삶을 향한 존중, 그리고 이웃을 위한 작은 실천이 바로 우리 마을을 지켜주는 힘이다.” 고 말했다.

목요일의 광주는 오늘도 조용하지만 따뜻하다. 고려인마을 한 켠에서 차려진 한 상의 밥과 국, 그리고 나물 한 접시. 그 안에는 시대를 견디고, 상처를 나누며, 희망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기에 그들은 말없이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진짜 의미’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김금덕 기자 jbnews2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