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공범, 그 침묵을 깨야 할 때 서귀포시 시민소통지원실 소통감찰팀장 조성수 정보신문 jbnews24@naver.com |
2025년 07월 14일(월) 09:51 |
![]() 서귀포시 시민소통지원실 소통감찰팀장 조성수 |
그는 일제의 앞잡이가 되어 동료들을 밀고하고, 해방 이후에는 ‘협력자’라는 이름으로 법정에서 면죄를 받는다. 그 앞에서 그는 말한다.“다들 그렇게 살아.”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남는 것을 정당화하는, 흔한 자기합리화였다. 영화 속 안옥윤은 침묵 끝에 총을 겨눈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긴다.
이 장면은 단죄나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연출이 아니다. 오히려 옳고 그름의 경계를 흐리는 사회 구조, 그리고 침묵으로 책임을 피하는 다수에 대한 상징적인 메시지로 읽힌다. 그 장면은 묻는다.
과연 염석진은 혼자 그렇게 된 것일까?그를 지켜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사람들, 알면서도 외면했던 조직 문화, 불의 앞에서 침묵했던 구조. 그들이야말로, ‘시스템이 허용한 침묵의 공범’은 아니었을까. 청렴은 단지 부정을 저지르지 않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부당함을 마주했을 때 말할 수 있는 용기, 그리고 그 용기를 지켜주는 조직과 제도, 그것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진짜 청렴이 작동한다. 아무리 올곧은 사람이라도, 말하는 순간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구조 속에서는 결국 침묵하게 된다. 그리고 그 침묵은 또 다른 불의를 낳는다.
청렴은 개인의 양심만으로 지켜질 수 없다. 함께 지켜주는 구조가 필요하다. 공직사회에서 청렴은 선택이 아닌 책무다. 하지만 “괜히 나섰다가 불이익 받지 않을까”, “말해봤자 바뀌는 게 없다”는 분위기가 조직을 지배한다면 청렴은 뿌리내릴 수 없다.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고립되고, 침묵이 미덕이 되는 조직은 결국 공정과 정의를 잃는다.
이는 단지 개인의 비위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구조적 위험이다. 청렴은 거창한 구호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작은 침묵 하나를 깨는 용기에서 시작된다.그리고 그 용기를 지켜주는 시스템이 함께할 때, 우리는 침묵의 공범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선택의 순간에 서 있다. 침묵의 공범속에서 같이 할 것인가, 아니면 침묵을 깰 용기를 낼 것인가. 그 침묵을 깬 사람이 많아질수록, 우리의 조직은, 사회는, 그리고 공직은 더욱 건강하고 단단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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